야마가류 축성법에 따라 축성된 성 내에는 천수각 이외에도, 많은 ‘야구라’, ‘성벽’, ‘돌담’이 남아 있습니다. 그 밖에 가메오카 신사나 나한송 가로수 등,
매력이 가득한 성 내를 산책해 봅시다.
니노마루의 북부를 지키는 겐소 야구라는 ‘5단 하구치’라 불리는 급한 벼랑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현재는 절경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정비되어 있습니다. 히라도의 관광 정보나 관련 시설에 대해서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니노마루의 동쪽을 방어하기 위해 시라하마항이 바라보이는 위치에 세워진 망루입니다. 현재는 일본의 100대 명성 최초의 상설 숙박시설 ‘시로하쿠’로 정비되어, 숙박이 가능합니다(유료 예약제). 나만의 공간에서 히라도의 바다를 독차지할 수 있습니다.
니노마루의 북쪽에 위치한 망루입니다. 이누이 야구라와 기타코구치몬 문을 이어주는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측면에서 기타코구치몬 문을 방어하기 위해 성벽에서 돌출되게 설계되었습니다.
히라도성에 남아 있는 번청 시대의 유일한 망루입니다. 정식 명칭은 다몬 야구라이지만 망루를 수리할 당시에 너구리가 시동으로 둔갑하여, 마쓰라번 영주의 침소에 찾아와 이대로 망루에 살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고 하여, 그때 이후로 다누키(너구리) 야구라라고 불립니다.
북쪽을 방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문이며, 현존하는 유일한 목조 유구입니다. 돌담과 돌담 사이에 건너는 ‘와타리 야구라’ 양식으로 축조되었습니다. 영주의 정원(세이카엔)에서 가장 가깝고 니노마루고텐으로 통하는 문이었습니다.
히라도성의 재건축 당시, 니노마루고텐을 수호했다고 여겨지는 이누이 야구라. 히라도의 건(乾) 방향(북북서)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누이(乾) 야구라라고 불렸습니다. 망루의 북쪽에는 다른 성문과 연결된 ‘비밀의 작은 문’이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사이와이 다리가 놓인 장소는 일찍이 번 무사의 택지 등이 있었던 곳으로, 이 다리는 성과 성하마을을 연결해 주는데 이용되었습니다. 현재, 히라도 시청 앞 가가미가와 강에 가설된 돌다리는 1984년에 수리 복원한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사이와이바시고몬 문도 복원되었습니다.
1880년 히라도성 내에 있었던 레이친잔 신사가 노후되어, 히라도성 니노마루 터에 시치로 신사, 오토미야 신사, 하치만 신사 등 3사와 합쳐진 신사입니다. 10월의 ‘히라도 군치’에서는 히라토 가구라의 24개의 모든 연기를 보여주는 다이다이카구라가 공연되었습니다.
종래의 총안은 회반죽을 바른 벽에 구멍을 뚫어 적을 공격하였지만, 히라도성의 총안은 돌담에 구멍을 뚫은 보기 드문 것입니다. 성내의 다누키 야구라 부근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4대 마쓰라 기요시의 11번째 딸이자, 메이지 천황의 조모인 아이코의 동상입니다. 마쓰라 가문과 천황가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히라도는 마쓰라 가문의 성하마을로, 1599년에 히라도세토가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히노타케성이 축성되었는데, 그 때 심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나한송 가로수는 가까이 두 줄로 늘어서 있으며, 크고 작은 12그루가 열쇠 모양으로 늘어서며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줄기 둘레가 5.5m나 된다. 이처럼 멋진 나한송 가로수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1601년에 프란체스코 회원인 히에로니무스 데 카스트로가 영주 마쓰라 시게노부에게 ‘담배 씨앗’을 선물하였다고 합니다. ‘일본 최초의 담배 씨앗 도래지’라고 새겨진 석비입니다. 국제 교류의 항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엽벚나무’의 꽃이 2중으로 겹쳐 피는 ‘니도자키사쿠라’입니다. 먼저 바깥쪽의 꽃잎이 피고, 이어서 중앙의 꽃봉오리가 벌어지기 때문에 ‘니도자키사쿠라(두번 피는 벚꽃)’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오테고몬 문에서 약 50m 들어온 곳에 위치한 문으로 니노오테 야구라와 병설되어 있었습니다. 니노마루에는 영주 저택 ‘니노마루고텐’이 있었기 때문에, 이 문은 대단히 중요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히라도성의 정면에 위치한 문입니다. 현재도 돌담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마스가타 고구치 양식을 채용한 적의 침입을 좌우에서 방어하는 튼튼한 문입니다. 천수각 3층에는 실제의 디오라마로 돌담 쌓기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